2.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가 문제되는 이유
① A급 전범 합사와 유슈칸(遊就館)
야스쿠니신사는 1978년 10월에 A급 전범 14명을 비공개 합사(合祀)하였다. 이 사실은 1979년 4월 언론을 통해 보도 되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아시아 각국이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A급 전범이란 태평양 전쟁의
문제는 일본 스스로에게뿐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관계, 인도주의 국제원칙과 관련해서도 아직도 깊은 상처와 함께 이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를 외면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로서는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일본사회의 우경화
일본을 소리 높여 규탄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과거사법 처리에는 소극적이고, 그 내용을 축소하며 폄하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광복 후 대부분 지도층에 위치하고 있던 친일 인사들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남아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광복 후 60여년이 지나도록
3. 한일관계의 경제적 측면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한일관계는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한일관계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매우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이번 장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적 상황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한국과 일본의 수출입동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일본의 민족주의 성격을 강조하며 자유적인 역사인식의 모습까지고 담고 있는 단체이다.
또한 일본은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통해 군국주의 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공식 참배를 강해하고 있으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주변국들은 야스쿠니신사 바로 아래에 있는 치도리가후치(千鳥ケ淵) 전몰자 묘역이 아닌 야스쿠니신사만을 고집하는 일본의 저의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일본의 경우 지금까지 총리가 신사를 참배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국제 사회가 들썩였지만 지
총리와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공식 참배 실행으로 집중되었다. 박 훈 외, 『일본 우익의 어제와 오늘』- '야스쿠니신사참배' 동북아 역사재단 2008
수상의 야스쿠니신사참배가 공적인가 사적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은 1975년 미키다케오(三木武夫)수상이 사적인 참배임을 명시하면서부터 그
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최근 고이즈미의 신사참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개인신분으로 참배했다는 변명에 따른 일본 내부의, 그리고 각국의 논쟁에 관해 일본 국내외 비평가들은 중대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앞에 두고 정치가 마
일본의 우경화현상으로 인하여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는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주요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왜곡, 독도 영유권 분쟁, 보통국가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참배에 대하여 보다 면밀히 알아보고 결론을 도출해 보고자 한
한국과 일본의 역사인식의 괴리와 그에 의한 양국 간의 갈등을 의미한다. 이를 넓게 보면 주권국가의 영토문제라고 할 수 있는 독도문제도 포함되며, 한정적으로 본다면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 역사 및 윤리 교과서 역사기록 문제, 그리고 위안부 문제, 한일 과거사 배상문제가 포함된다.